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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일기/서울 라이프

오늘의 불쾌함

by 헤일매리 2013.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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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불쾌함




# 몹시 불쾌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전 여자친구의 망상에서 허우적거리다 몹시 불쾌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점심무렵 종필이로부터 카톡이 왔다.
본인의 부고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 몹시 불쾌한 기분으로 오후를 보냈다.
종필이의 죽음을 빈소에 직접 전화를 하고서야 실감했다.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하찮아 보인다.
죽음이 스쳐가며 내게 내쉬는 곁바람이 몹시도 서슬퍼렇다.

# 종필이는 이틀전 수면내시경 중 마취상태에서 간호사더러 나중에 술한잔 하자고 장난을 쳤었다. 깨어나서 그 사실을 알고는 몹시도 부끄러워했다. 그도 큭큭거렸고 그 글을 읽던 나도 큭큭거렸다.

# 여전히 몹시 불쾌하다.
이 순간에도 그 생각이 큭큭거려 몹시 불쾌하다.
그 자식은 여전히 웃고 나머지 우리 모두는 운다.


#


# 고등학교 1학년 어느날, 진실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거창에 있어 나중에서야 진실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통영에 있던 종필이는 상가집에 빨간색 셔츠를 입고 갔다가 민폐를 끼쳤다고 했다. 

나중에 지민이가 그 얘기를 전해줬다. 


# 2월 14일이 지민이 생일인데,

종필이랑 나랑 지민이 생일 선물을 사느라 시내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종필이가 스웨터를 샀는데, 나도 괜히 그에 걸맞은 선물을 해주고파 청바지를 사준 기억이 난다.

삼만원.

중학생 시절 생일선물로 하기에 내 형편과 분수에 맞지 않는, 비싼 선물이었다.

엄마에게 엄청 혼난 기억이 난다.


# 우리의 졸업식.

마침 그날은 지민이 생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졸업식장에서 마지막으로 종필이를 봤겠지.

그 이후로 종필이를 본 적은 없다. 


# 누군가 종필이가 간호학과에 들어갔다고 말해줬다. 

뭐하는 자식이지.


# 올초 페이스북에서 종필이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 GS칼텍스 여수근무.

나한테 거짓말했던 놈은 누구지.


# 종필이에게 자기가 죽었다는 카톡이 왔다.

지민이도, 진실이도, 그 누구랑도 종필이와 나와 맞닿아 있는 사람이 없어 이걸 어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결국 다시 여수에 있는 전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해 혹, gs에 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다. 

물어보는 내가 오히려 미안했고, 그 반응에 불쾌했다.


# 다시 돌아와 결국 종필이의 죽음을 빈소에 직접 전화를 하고서야 실감했다.

11월 29일 오전 9시 47분. 조금 전 발인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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