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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일기/단상

오늘의 서태지와 그래비티와 바다와 인터스텔라

by 헤일매리 2014.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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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8. MBC 무한도전 중 >

무한도전에 서태지 옹의 집이 나왔는데 넓게 탁 트인 거실이 참 보기 좋았다. 그 느낌은 바로 영화 <그래비티>를 볼때 와닿던 그런 시원함같은 것인데, 온갖 번민을 몽땅 싸잡아 날려버리는 힘이 있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득 '서태지는 그런 고민 안하고 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넓은 정원을 두고서 라면을 먹을까 말까, 하는 고민은 너무나 하찮아 보였다.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거나 6자회담의 성사여부를 앞두고 곧 만나게 될 아베총리와 시진핑 국가주석 간의 기책을 점쳐 본다거나... 뭐 그러지 않을까.

그러나 서태지도 라면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그 역시 마트에서는 분명 고민을 했을거다, 너구리를 살지 말지.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는 팔도비빔면을 살지 말지. 그러니 박명수가 라면 끓여달라 했을 때 승낙을 했겠지. (승락인가?)

그리고 나도 알고 있다.
어릴 때 그렇게나 넓고 넓은 바다를 보면서 자랐으면서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하찮다고 생각했던 그 고민들을 넓디 넓은 바다 앞에서 늘어놓았고, 다음에도 반복했다. 언제든 문제는 상존해 있었다.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들이 내 삶 도처에 자리잡고 있다.

시뻘겋게 익어가던 2월의 샌티모니카 바다는 내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참 좋은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내게는 빨간 노을의 색과 바다와 하늘이 합쳐지던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던 내 모습만이 기억된다. 오늘의 내가 나일수 있게 만들어준 좋았던 시간!

통영의 푸근한 바다도, 여수의 시커멓던 바다도, 광안리의 조금은 쌀쌀했던 바람도, 그 앞에서는 나의 어떤 고민들도 무모해지고 작아지지만 나는 여전히 존재했고 나와 함께 하던 당신도 그대로였다. 시간이 지나면 문제는 해결되거나 사라지거나 어떻게든 존재를 감췄고 (새로운 문제는 또 있지만!) 바다와 당신과 나는 그대로였다. 서태지도 그것을 알고 있는 거겠지. 너구리를 먹을까 말까 하는 고민은 언제나 있지만, 결국은 뭐든 먹기 마련이고 맛있게 먹었음 그걸로 됐다. 서태지의 넓은 정원은 어떤 고민이든 작게 만들어주는 위력이 있겠지.


인터스텔라가 얼른 보고싶다. 한웅재씨의 <소원> 의 가사처럼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게 되는 시간이 되겠지. 


온세상이 내 시야에 들어오게 되길. 

당신만이 내 시야에 가득 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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