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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일기/단상

메뚜기

by 헤일매리 201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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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4.

신명기 1:20-46절 말씀.

청년부예배 신형석 목사님.



출애굽 이후 각 지파의 지도자 1인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임무를 띄고서 다녀오는데,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이 본 것은 메뚜기같은 자신의 모습.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리고 거인처럼 보이는 그 곳의 원 거주민들.

-하나님이 주기로 약속하신 땅을 보고도 지레 낙담해버렸다.


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곳의 거인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땅을 보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과 그 곳에 함께 계실 하나님.


이후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정탐꾼의 보고에 분노하신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다시 광야로 돌아가라 명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네들끼리 한번 싸워보고자 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결과는 참패. (41~45절)



목사님께서는 설교 말미에 이렇게 연달아 말씀하셨다.



요즘같은 시대, 그러니까 절대적인 가치는 없고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가르치는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청년들이, 그렇게 자라온 청년들이,

단지 성경의 말씀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이 현 시대에 가능할 것인가?

성경이기 때문에 지키며 살 수 있나? 

성경에서 아니라고 할 때, 나는 그렇게 따르고 포기할 수 있나?


말씀이 자꾸 나를 찌를 때 순복하는 것.

그렇게 할 때 약속하신 기업을 받고 살아갈 수 있다.

내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나의 결단. 

결국 회심의 문제이고 말씀에 믿고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


그렇게 길을 걸으며 그 길의 중간이 아니라 길 끝에서서 믿음의 복을 받을 수 있다,

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 고민의 실타래 하나가 풀리는 것을 느꼈고 또 그렇게 결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야호.





덧,

내가 대학교 때부터 줄곧 고수해오던 나의 삶에 대한 자세는 이런 것이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좌우에 날선 검처럼

어느 것도 쉽게 선택하지 말고, 어느 것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칼 끝에 언제나 예리하게 서 있으라.


손교수님과 신교수님으로부터 배운 말이다.

교수님께서는 어린 대학생들이 20대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때 아는 것이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셨고,

선교지라는 낯선 땅에서 받는 카타르시스가 자기가 무슨 은혜라도 받은줄로 착각하는 것을

꾸짖으셨다. 


나는 교수님의 이 가르침을 내 우유부담함의 근거로 삼았는데,

늘 칼끝에 서 있으려 하면서 칼끝에서 주의 말씀에 순복할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단지 그렇게 예리하게, 어느 것 하나 선택도, 포기도 하지 않는 그 자체가 정답인양

살아왔던 것 같다. 그야말로 내가 바로 메뚜기였다.


말씀이 자꾸 나를 찌를 때 순복하는 것.

그렇게 살 때 우리 삶은 힘들겠지만 또한 기쁘겠지.

그렇게 나는 다음주부터 찬양팀에 가기로 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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